
1960년대와 70년대 부산 장림동에 존재했던 영화숙과 재생원은 부랑인 선도라는 명목 아래 수천 명의 무고한 아이들과 시민들을 강제 수용했던 비극적 시설이었습니다.
일상적인 가혹행위와 무보수 강제노역, 암매장 의혹으로 얼룩졌던 이 사건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받으며 진실의 전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흔히 부산의 집단수용시설 비극이라 하면 형제복지원을 떠올리지만, 그 거대한 비극의 시스템이 싹튼 진짜 뿌리는 바로 영화숙과 재생원이었습니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참혹한 지옥
한국전쟁 직후 거리 정화와 사회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부산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된 영화숙과 재생원은 외견상 구호 시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담장 안으로 끌려온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와 집이 멀쩡히 있던 어린아이들과 평범한 서민들이었습니다.
💡 영화숙과 재생원의 구별
영화숙은 주로 아동과 청소년을 수용하던 공간이었으며, 재생원은 성인 수용자를 관리하던 시설로 부산 사하구 장림동 일대에 위치했습니다.
- 영문도 모른 채 경찰과 단속반에 의해 진행된 강제 연행
- 몽둥이질과 가혹행위, 소금 뿌린 보리밥으로 견뎌야 했던 extreme한 굶주림
- 탈출 시도자에 대한 본보기성 보복 폭행 및 무보수 강제노역
교도소에서 날아온 36년 만의 고백

최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진 앞으로 36년째 복역 중인 한 재소자의 긴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자신을 살인자라고 밝힌 제보자는 어린 시절 영화숙에서 생활하며 범죄를 교육받았고,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특히 가혹행위로 숨진 어린 수용자 7명과 성인 및 수용자 11명의 시신을 야산과 갈대밭에 암매장해야 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맞섰던 알로이시오 신부

어두운 비극 속에서도 아이들의 손을 잡아준 참된 어른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미국에서 건너와 구호 활동을 펼친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입니다.
그는 상처 입은 아이들의 증언을 접한 뒤 1970년 영화숙 아동 301명을 자신이 운영하던 소년의집으로 거두어 보살폈습니다.
또한 원장 이순영을 형사 고발하고 마리아수녀회와 함께 100만 명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참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수십 년 만에 드러난 사법적 단죄와 남겨진 과제

당시 시설 원장은 횡령과 폭행 등 일부 혐의만 인정되어 최종적으로 벌금 30만 원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 덕분에 진실화해위원회의 직권조사가 이루어졌고, 국가폭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실이 공식 인정되었습니다.
2026년 초 법원은 피해자 및 유족 180여 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와 부산시의 511억 원 배상 책임을 인정 판결하였으며, 이는 판결 확정으로 이어졌습니다.
👍 장점
- 진실화해위원회의 공식 조사를 통한 인권침해 규명
- 국가 및 지자체 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법부 판결 확정
🤔 아쉬운 점
- 고령 생존자들의 여전한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
- 장림동 야산 등에 차갑게 묻힌 미발굴 유해와 명예 회복 과제
Q. 영화숙 재생원 사건은 형제복지원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영화숙·재생원은 1960~70년대 부산에서 운영된 부랑아 및 성인 수용시설로, 형제복지원보다 앞서 강제 수용과 폭력 시스템이 확립된 원형적 사건입니다.
Q.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진실 규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로 국가폭력이 인정되었으며, 2026년 국가와 부산시의 511억 원 손해배상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다만 유해 발굴과 트라우마 치유는 계속 진행 중입니다.
📣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힐 뻔했던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피해 생존자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과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을 이어가 주세요.